조동현(독립운동가 조상현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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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우리 삼남매를 앉혀놓고 유언을 하셨어요. 

 내 손을 꼭 잡으시더니 

너의 큰 누이가 만주 어딘가에 살고 있을테니 찾으라고 ."




   1992년에 한국과 중국이 수교되서 중국에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기 사작했어요. 거기에는 조선족도 많았습니다. 제가 담당공무원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조선족을 만나면 5만원찍 쥐어주며 누님의 신상을 수소문해서 찾아봐 달라 부탁했어요. 하지만 소식은 전혀 없었어요.


   퇴직하고 2년 후에 충청북도 경찰부에서 전화가 왔어요. 당신 혹시 중국에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는거예요. 중국에서 당신을 찾고있다 그러는 겁니다. 나도 모르는 조카라는 사람이 청주에 살고있는 조동현을 찾는다는 겁니다.  


   내가 공무원이었으니 경찰이 서울에서 살고 있던 나를 찾은 거예요. 결국 조카라는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됬는데 중국말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닌 것 같은 사투리 때문에 이해를 할 수 없었어요.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할 만한 사람을 바꿔서 이야기를 해 보니. 조카가 강원도에 본사가 있는 한국 네일아트 회사 중국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거예요.


   그래서 연길로 가서 확인하기로했어요. 서로 얼굴도 모르니 피켓에 내 이름을 써서 기다리라 했습니다. 연길에 도착해 승객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남은 사람을 찾기 힘들었어요. 한켠에 노인 한 사람과 아이를 동반한 대여섯명의 무리가 보였어요. 그 노인이 나의 큰 누나였어요. 내가 3살 때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갔으니 나는 알아볼 길이 없었죠. 그런데 큰 조카라는 이가 가방을 끌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소리치는 거예요. ‘저거 삼촌, 저거 삼촌’. 어떻게 알아봤냐고 물었더니 얼굴 윗부분이 닮았다는 거예요. 


   다섯평이나 될까한 집 안 한 켠에는 솥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씻을 수 있는 세숫대야 하나 놓여있었어요. 여기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누추했어요. 거기서 닷세를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큰누나는 나를 보고 내내 울가만했어요. ‘네가 동현이냐, 네가 동현이냐’ 이렇게 되뇌이면서요. 


   그렇게 큰 누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인하고 돌아와서 서울 사시는 누님 두 분과 대전에 사시는 누님께 전화를 했어요. 그렇게 한 달 후 다시 세 누님들과 연길로 큰누님을 뵈러 다시 갔어요. 입국장에 큰 피켓이 들려져 있고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더라구요. 62년만의 이산가족 상봉이 큰 뉴스였어요. 함께 간 세명의 누나들은 큰 누나를 알아보시더라구요.  나는 일주일 머물다 돌아왔고 누이들은 한달을 거기 머물었어요. 큰 누이와 함께요. 큰 아들이 이야기를 듣고 집을 사드리겠다고 해 집을 한 채 사드렸어요. 저는 부보님이 안계시니까 큰누님이 부모님과 같은 존재였어요. 


   한국에 돌아와 큰 누님을 한국에 초청하려고 비자를 준비하던 중 이름이 다른것을 알게 됬어요. 한국 호적과 중국에 등록된 이름이 달랐던 거예요. 중국에서는 한자를 일본식으로 바꿔 등록했던 거예요. 한국에서는 조봉남 중국서류에는 조춘자로 되었어었어요. 초청비자를 발급하려면 개명을 해야 했어요. 그 당시 개명을 하려문 소송을 해야 했어요. 개명을 할 수 있는 변호사를 구할 수 없어 직접 소송을 준비했어요. 자판도 칠 줄 몰라 자필로 서류를 준비했습니다. 개명 허가 판결이 나고 초청을 하려는데 전화가 왔어요. 누님이 돌아가셨다고.



"한국 호적과 중국에 등록된 이름이 달랐던 거예요. 

중국에서는 한자를 일본식으로 바꿔 등록했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