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옥(역촌동)

671ed76e6a792.jpg


언제부터 은평에 살았나요? 그 시절 어떤 기억이 있나요?

 

저는 역촌동에 살고 있는 이병옥이라고 합니다. 1981년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불광동으로 들어와 와 대조동으로 이사하고 2019년부터는 역촌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대조시장에 많이 놀러 갔어요. 거기서 동명여고로 이어지는 대조동, 그리고 대조어린이공원까지 친구들이 살아서 그 쪽을 많이 돌아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있어요. 놀이터에서 흙장난하면서 놀았던 기억이죠. 조금 커서는 아래쪽 연신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양지극장이 있었는데 동시상영으로 만화영화 상영할 때 가서 봤던 기억도 있습니다. 재개봉관이어서 동시 상영을 했는데 어린이용과 성인용을 같이 상영해서 부모님이나 아니면 형들이랑 같이 가야 했어요. 지금의 엔씨백화점 쪽에는 스타극장이 있었어요. 양지극장이 있던 자리 옆에는 오래된 음식점 목로집이 남아있고요. 불광초등학교, 연천중학교, 선정고등학교를 다니며 바라봤던 동네 모습의 기억이 있어요.

서울이 고향이다 보니까 방학 때 같은 경우는 거의 동네에서 살았었고 그런 부모님이 연신내에서 음식점을 하셔서 친구들이랑 집에서 계속 같이 놀았었고. 조금만 구파발 쪽 지나가면 다 논밭이어서 개구리도 잡으러 다녔어요. 불광중학교 뒤쪽에도 논밭이 있어서 거기서 개구리잡고 사슴벌레도 잡곤 했어요. 두어 고개 넘어 북한산 초입에까지 놀러 다녔어요. 은평구가 서울이라고 해도 70년도에 서울로 편입됐으니 그때까지도 한적한 편이었죠. 구파발부터 독립문까지 지하철이 개통했을 때는 신기한 마음에 그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왔다갔다 했던 기억이 있어요.

어쩌다가 미술을 접하게 됐는데 나랑 잘 맞더라고요. 은평에 학교가 많이 있어서 다른 지역에서 부러워했죠, 이쪽을 강북의 8학군이라는 얘기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학원들이 많았는데 미술학원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조그마한 화실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게 됐고 그러면서 미대를 가게 됐고 졸업하고 나서는 작업을 하다가 생계 문제 때문에 일을 좀 하다가 다시 은평으로 돌아와서 지금 작업을 계속하고 있죠. 직장 생활을 위해 강남과 이태원에 한동안 지내다가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거죠. 은평에서도 몇 번 이사를 해야 했는데 불광동에 살았다가 대조동에 살았다가 역촌동에 산 이유가 처음에 불광동이 재개발이 됐어요. 지금의 현대홈타운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되면서 이주를 나오게 됐고, 대조시장 뒤쪽에서 오랫동안 살고 지내다가 우리 집이 재개발지구에 들어가게 됐고 공사가 시작되며 또 역촌동으로 이사를 하게 된 거죠.

부모님도 대조시장 건너편 녹번동에 이주해 살고 계십니다. 재개발이 끝나면 다시 대조동으로 돌아오실 예정입니다. 제 작업장은 역촌동에 계속 있겠지만 저는 대조동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지금은 역촌동 작업장에 집처럼 머물고 있어요.


어떤 일을 하나요?

 

저는 조각을 전공했습니다. 입체 기반으로 작업을 하고 있고 요즘은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키네틱 아트작업을 하고 있어요. 움직이는 대상을 관찰하고 연구합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하잖아요. 저는 그런 장애를 발견하지 못한 장애라고 표현하는데 그런 것들을 드러내고 대안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예전에 편마비가 있었어요. 혼자 활동을 못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대체 움직임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 작업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대체 움직임을 사람이 따라서 할 수 있을까, 혹은 작품으로 만들어볼 수 있을까를 실험하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다시 돌아와서 예술 활동을 하다 보니 내가 거주하고 있고 활동하고 있는 공간을 보둠을 수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었어요. 지역에 있는 마음 맞는 예술가들이랑 모여서 예술인단체를 만들고 예술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어떤 환경을 만들어가야 하나요?

 

은평구에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고 하잖아요. 홍대나 상수, 마포, 이런 지역에 작업실을 갖고 있던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좀 높아지면서 외곽으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됐어요. 이분들이 은평구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은데 활동 기반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 보고 싶어요. 구청이나 재단에서도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더해서 예술가들이 좀 더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게 기반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많은 예술가들이 혼자서 작업을 하지만 네트워크가 없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조건들이 있어요, 네트워크는 아주 중요해요. 마음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열린 장을 만들어놓고 시도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여기 은평 끄트머리 수색에 은평청년예술발전소라는 공간이 있어요. 청년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에 4년, 5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공모를 통해서 상주하는 단체로 선정이 돼서 활용할 수 있게 됐어요. 이 공간에서는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 될 겁니다. 지역의 축제나 커뮤니티와 연계한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층. 저희 부모님도 아직 어디 못 가지고 이 동네에서 계속 살고 계시는 경우도 있고. 그렇다고 또 젊은 사람들이 없는 그런 뭐 그런 지역도 아니고 이게 사람들도 계속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고 너무 다양성이 되게 큰 것 같은데 정말 어느 지역보다는 어느 지역들보다 유동인구도 많고 그러다 보니까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는 뭔가 구심점이 사실 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예를 들어서 지역축제도 마찬가지고 다양성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어요. 매번 지역 축제를 하지만 거기서 지역민들이 공감갈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이런 것들도 한번 생각해볼 수 있고 또 다양성도 사실 필요하다고 보죠. 학교도 많고. 그다음에 이 지역은 노후된 건물들이 좀 많이 있는 지역들이다 보니까 재개발 이슈들도 많이 있고 현재 재개발되고 나에 다시 재개발예정지에 있는 부분도 있고 예를 들어서 증산동같은 경우는 전 구역이 거의 다 이미 재개발이 완료가 됐고 그다음에 재개발하고 준비하고 있는 데도 있고 그 재개발 계획이 있는 분도 있고 그런 것들을 보면서 또 저도 마찬가지 재개발 때문에 2주 나와 있는 상황이고 지역민들, 이 지역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어떤 구심점이 뭘까. 그게 혹시 예술일까, 어떤 문화적인 걸까? 또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런 다양성들 지역에 살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현실적인 얘기들, 이런 것들도 사실 좀 더 고민해보고 어떤 정책적인 거나 뭐 이런 부분에서도 사실 예술가들은 어떤 정책에 대해 해결해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떤 제시를 할 수 있는 제시 자의 역할을 많이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뭐 정치하는 사람들은 잘 안 만나려고 하는데 정치를 하는 사람들 이분들의 이름으로 자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그런 자리도 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가끔은 해요.

 

 

최근에 은평의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있나요?

 

작년에 지역 활동에 관한 인터뷰 요청이 있어서 갈현동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인터뷰에서 학교 후배들을 만나게 됐고 주위 여러 작가들을 만나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어떤 사업들을 같이 진행할 수 있는 구심점이 만들어졌어요. 표면으로는 재미로만 그러는 것 같지만, 예술가들 많이 공상도 많이 하고 하잖아요, 서로 어울리면서 말도 안 되는 상상하면서 답도 없는 얘기하면서 농담도 하고 그런 식의 상호작용이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거기서 나온 아이디어들이 한 두 개씩 쌓이면서 다음에는 어떤 작업이나 활동할 때 이런 것들 한번 적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중 하나가 아카이브와 관련된 이야기였어요.

어릴 적 기억 속에 은평구와 지금의 은평구를 비교해 보면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이 은평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최근 들어 재개발이 계속 추진되면서 은평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지역의 다양한 공간을 문화 관광자원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개천 변에 있었던 누구네 슈퍼의 수십 년 이야기, 집 앞 골목의 쌀집 아들내미의 이야기. 그걸 기록해 놓고 나중에 찾아가는 방법을 설계하고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예전에 불광동 독박골에서부터 내려오는, 대조시장을 거쳐 지금의 불광천까지 이어지는 개천이 있었어요. 그 개천이 언제 복개됐는지, 왜 시장들이 거기에 있었는지, 이런 기록들이 구전으로만 내려오지, 공식적인 기록들이 상당히 부족합니다. 대조동에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선 자리가 예전 서부시외버스터미널 자리였는데 당시 금촌, 문산행 시외버스가 출발하던 곳이었습니다. 휴가나 외출 나온 군인들로 항상 북적였어요. 군인용품점이 성행했었고 유명한 중국집은 지금까지 남아있어요. 거기도 원래 시외버스터미널 자리가 아니었어요. 70년대 불광초등학교 뒤쪽에 시외버스터미널 자리가 있었는데 매연과 소음 문제로 옮겨졌고, 지금에 와서는 다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선 거지요. 어르신들은 아직도 그런 걸 다 기억하고 계시는데, 그런 기억을 기록해 놓으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전할 수 있지 않겠어요.

도로들이 왜 일자로 뻗어 있지 않고 굽이굽이 틀어져 있는지, 왜 엔씨백화점 주위로 길들이 Y자로 모이는지, 거기가 예전에 개천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거든요. 그런 것들을 알아가면서 지역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누군가에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요.

 

 

은평은 예술가들에게 어떤 동네였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고향이라는 기억은 아련하게 마련입니다. 내가 살았던 지역이 잘 되길 바라지만 익숙한 공간으로 계속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개발이 되거나 변해가는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지역의 변화되는 모습을 어떤 뭔가로 남겨놓아야 하는 그런 활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지역에서 바라는 점은 집값이 많이 안 올랐으면 좋겠어요.

저는 은평을 서울의 마지막 변두리라고 소개하거든요. 지금까지 시골스러운, 낡은 변두리 같은 건물들과 도로와 산을 따라 이어지는, 서민들이 살아가는 공간들. 그런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삶이 개선되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곳에 이주해 살기는 싫거든요. 어렸을 때야 어디든 가서 살 수 있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살아왔던 동네가 더 좋아지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업실의 주변 사람들이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는데 최근에 사람들이 알게 됐어요. 일부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이웃분들과 어떤 연결이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서로 도울 수 있는 환경도 도 하나씩 만들어질 수 있는 거니까. 옆에 간판 하시는 사장님하고도 친해져서 누가 간판 제작 얘기하면 간판 사장님을 소개해 드리고, 내가 간판 관련된 작업이 필요하면 급한 부탁도 할 수 있고, 그렇게 같이 사는 동네 같아요.